최영희 시인의 방 353

저기 저- 길은 오래된 길

저기 저- 길은 오래된 길 -반세기 만에 찾은 고향 마을에서- 설백 최영희지구의 반쯤은 돌아서 왔나 보다저기 저- 길은 오래된 길 시간의 그림자만 지친 듯 고요하고 아무도 없다해 질 녘아이들 한둘 모이고 모이면 왁자지껄하던 골목길저기쯤이 내 생(生)의 반환점이었나 보다손이라도 잡고 싶은 우리들 그때 그 어린 그림자 바람처럼 날아가 버렸구나아-, 정겹던 길 그리움만 서성이고산도 들도 옛 생각에 잠겼을까 침묵인 채 바라만 보고 있다.

나, 오늘 무엇을 염려하고 있는가

나, 오늘 무엇을 염려하고 있는가 설백 최영희지금 내가 지나는 길목나무들이 침묵으로 서 있다가끔씩 불어대는 방향 잃은 바람 저들을 혼란스럽게 했겠다그래도 저들은 어제도 오늘도불평을 말하지 않는다주어진 세상을 사랑하며묵묵히 살아간다그리고 늘 그랬듯 내가 지나는 이 길섶엔 작은 풀들이 오순도순 가슴 싸-하도록 정겹다그들은 오늘도 한 숟가락 분의 햇살과 살가운 바람만으로 저토록 행복해한다평온이다평화로 가득한 저들 곁에 선 내 안의 나내게 주어진 이 푸르른 날의 고요함 나, 오늘 무엇을 염려하고 있는가. -제7시집 원고 63-

꽃다지 사랑

꽃다지 사랑 설백 최영희 어쩌지요시린 봄볕에 노랗게 타는 마음보일지 몰라그대, 즐겨 걷던들 섶, 곳곳 피어도내, 그대 부르는 소리들릴지 몰라밤마다멍울진 가슴한 끝씩 터트리는눈먼 귀 먼그댄스치는 바람저만치, 소월 님의 진달래꽃은,*‘즈려밟고, 가라 시지만사랑하는 이 마음은들녘 끝까지 피워 태우리라.*, 소월 님의 , 진달래꽃, 중에서

감사한 일

감사한 일 설백 최영희가난하다고 해서 마음까지도 가난하겠는가나처럼 가난과 더 가까이 살아온 사람도생각해 보면, 감사한 일이 더 많다먼저,이렇게 감사한 마음을 글로 쓸 수 있는우리말 우리글이 있어 감사하고아름다운 우리 강산, 언제고 여행할 수 있는 자유가 감사하고아무리 높아도 마음껏 바라볼 수 있는 푸른 하늘, 그리고 산에 들에 어릴 적 함께한 친구 같은 풀과 꽃 지금도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고 멀리 보이는 정겨운 저 산과 봉우리 그리고, 들길을 따라가는 여유로운 추억이 내게 있어 감사하고 강가에 햇살에 반짝이는 저 이쁜 조약돌과 조약돌 사이 마주 앉은 순이야, 옥이야! 너와 나, 어릴 적 친구여서 감사하다이제는 신문물(新文物)에 밀려난 정겨운 어머니의 장독대, 물..

그대는 내 사랑이었습니다

그대는 내 사랑이었습니다 -夫婦 찬가- 최영희사랑이여, 슬픈 내 사랑이여!겨울나무 숲을 걸어가는 쓸쓸해 보이는 당신 그대는 내 사랑이었습니다청청한 오월 푸른 잎 칭칭 감아올리는 등나무 같은 당신의 그 푸른 기운에 사랑이란 이름으로 내 삶의 전부를 걸었습니다전주곡이 슬픈, 봄이 오는 길목 당신 어깨 위 시린 햇살그 위로 손이라도 얹고 싶은걸요황혼 녘, 우리 사랑인걸요.

그곳은 어디쯤인가

그곳은 어디쯤인가 설백 최영희그곳은 어디쯤인가 그리고 그려봐도 아름다운 곳그리고 그려봐도 선(善)하고 따스한 곳순이네 덕이네 명이네,,, 편안하고 아늑한 초가지붕산 아래 맑은 도랑물 소리 골목 마다는 아이들 뛰고 노는 소리 멀리 엄마소 음~매 소리도 정겹던 나 나고 자란 곳 어디쯤인가 너와 나 함께한 우리만 아는 곳부르고 불러도 올 수 없는흐르고 흐른 세월둘러보고 둘러봐도 이제 어디에도 없는 곳내 그리운 그곳은 세상,어느 곳 어디쯤인가Ralf Bach - Loving Cello

슬프고 슬픈, 2024년도 가나 봅니다

슬프고 슬픈, 2024년도 가나 봅니다 - 설백 최영희봄부터 걷고 걷던 길물이 흐르는 호만천변 산책길 많은 사람이 오고 가지만모두가 낯선 사람들언제나처럼 편안히 맞아 주는 건 물소리 새소리 천변가 풀잎들고요한 듯 바람 불고또 한 해가 가나 봅니다54년 함께한 임이 가신슬프고 슬픈 2024년도 이제 가나 봅니다이쁘던 봄날도 가고푸르고 푸른 여름 지나햇살 좋은 가을날 갈대밭을 지날 때면 바람은 솔솔 불고 갈대꽃은 하얀 손 흔들며 슬픔은 멀리멀리“안녕” 하세요, “안녕” 하세요 달래는 듯 달래는 듯그, 하얀 손 잡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