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희 시인의 방

감사한 일

詩人 설백/최영희 2025. 4. 30. 06:32


감사한 일 설백 최영희 가난하다고 해서 마음까지도 가난하겠는가 나처럼 가난과 더 가까이 살아온 사람도 생각해 보면, 감사한 일이 더 많다 먼저, 이렇게 감사한 마음을 글로 쓸 수 있는 우리말 우리글이 있어 감사하고 아름다운 우리 강산, 언제고 여행할 수 있는 자유가 감사하고 아무리 높아도 마음껏 바라볼 수 있는 푸른 하늘, 그리고 산에 들에 어릴 적 함께한 친구 같은 풀과 꽃 지금도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고 멀리 보이는 정겨운 저 산과 봉우리 그리고, 들길을 따라가는 여유로운 추억이 내게 있어 감사하고 강가에 햇살에 반짝이는 저 이쁜 조약돌과 조약돌 사이 마주 앉은 순이야, 옥이야! 너와 나, 어릴 적 친구여서 감사하다 이제는 신문물(新文物)에 밀려난 정겨운 어머니의 장독대, 물동이, 똬리, 화로, 인두, 골무 그리고, 아버지의 지게, 소달구지, 쟁기, 괭이 무릎까지 둥둥 걷어 올린 흰 무명바지에 흙 묻은 검정 고무신까지 추운 겨울날 솥뚜껑을 쓰-윽 밀치면 김이 모락모락 나던 검은 가마솥의 잘 부풀러 진 찐빵 같은 따끈따끈한 추억! 내게 있어, 나는 오늘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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