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희 시인의 방 356

어느 여름날의 찬가

어느 여름날의 찬가 설백 최영희 이 찬란한 나의 호숫가 그대 함께 오소서 나의 하늘은사랑하는 나의 하늘은 나른하기만 하던 여름날의 창(窓)을활짝 열어젖혔소 우르릉 쾅! 쾅!- 쾅! 쾅! 격렬한 전주곡객석을 긴장시키고도 남았소 막이 오르고 곧이어, 후드둑-후드둑- 은빛 호수 위 방울방울 빗방울들 요정처럼 날아내리오 호수는 지금 요정의 나라 머리마다 보석을 두른 빗방울 요정들 호수 위 저마다 총총 별이 되고 그대와 나의 Giovanni Marradi - Shadows

저기 저- 길은 오래된 길

저기 저- 길은 오래된 길 -반세기 만에 찾은 고향 마을에서- 설백 최영희지구의 반쯤은 돌아서 왔나 보다저기 저- 길은 오래된 길 시간의 그림자만 지친 듯 고요하고 아무도 없다해 질 녘아이들 한둘 모이고 모이면 왁자지껄하던 골목길저기쯤이 내 생(生)의 반환점이었나 보다손이라도 잡고 싶은 우리들 그때 그 어린 그림자 바람처럼 날아가 버렸구나아-, 정겹던 길 그리움만 서성이고산도 들도 옛 생각에 잠겼을까 침묵인 채 바라만 보고 있다.

나, 오늘 무엇을 염려하고 있는가

나, 오늘 무엇을 염려하고 있는가 설백 최영희지금 내가 지나는 길목나무들이 침묵으로 서 있다가끔씩 불어대는 방향 잃은 바람 저들을 혼란스럽게 했겠다그래도 저들은 어제도 오늘도불평을 말하지 않는다주어진 세상을 사랑하며묵묵히 살아간다그리고 늘 그랬듯 내가 지나는 이 길섶엔 작은 풀들이 오순도순 가슴 싸-하도록 정겹다그들은 오늘도 한 숟가락 분의 햇살과 살가운 바람만으로 저토록 행복해한다평온이다평화로 가득한 저들 곁에 선 내 안의 나내게 주어진 이 푸르른 날의 고요함 나, 오늘 무엇을 염려하고 있는가. -제7시집 원고 63-

꽃다지 사랑

꽃다지 사랑 설백 최영희 어쩌지요시린 봄볕에 노랗게 타는 마음보일지 몰라그대, 즐겨 걷던들 섶, 곳곳 피어도내, 그대 부르는 소리들릴지 몰라밤마다멍울진 가슴한 끝씩 터트리는눈먼 귀 먼그댄스치는 바람저만치, 소월 님의 진달래꽃은,*‘즈려밟고, 가라 시지만사랑하는 이 마음은들녘 끝까지 피워 태우리라.*, 소월 님의 , 진달래꽃, 중에서

감사한 일

감사한 일 설백 최영희가난하다고 해서 마음까지도 가난하겠는가나처럼 가난과 더 가까이 살아온 사람도생각해 보면, 감사한 일이 더 많다먼저,이렇게 감사한 마음을 글로 쓸 수 있는우리말 우리글이 있어 감사하고아름다운 우리 강산, 언제고 여행할 수 있는 자유가 감사하고아무리 높아도 마음껏 바라볼 수 있는 푸른 하늘, 그리고 산에 들에 어릴 적 함께한 친구 같은 풀과 꽃 지금도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고 멀리 보이는 정겨운 저 산과 봉우리 그리고, 들길을 따라가는 여유로운 추억이 내게 있어 감사하고 강가에 햇살에 반짝이는 저 이쁜 조약돌과 조약돌 사이 마주 앉은 순이야, 옥이야! 너와 나, 어릴 적 친구여서 감사하다이제는 신문물(新文物)에 밀려난 정겨운 어머니의 장독대, 물..

그대는 내 사랑이었습니다

그대는 내 사랑이었습니다 -夫婦 찬가- 최영희사랑이여, 슬픈 내 사랑이여!겨울나무 숲을 걸어가는 쓸쓸해 보이는 당신 그대는 내 사랑이었습니다청청한 오월 푸른 잎 칭칭 감아올리는 등나무 같은 당신의 그 푸른 기운에 사랑이란 이름으로 내 삶의 전부를 걸었습니다전주곡이 슬픈, 봄이 오는 길목 당신 어깨 위 시린 햇살그 위로 손이라도 얹고 싶은걸요황혼 녘, 우리 사랑인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