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희 詩人 시집 작품

제4시집[오래된 것에 대하여]

詩人 설백/최영희 2021. 10. 29. 20:46

1, “가만히 있으라”

-2014 4월 세월호 참사-

 

                  최영희

 

 우리 착한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을

잘 들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라는 어른들의 말에

가만히 잘 있었습니다

배는 가라앉고, 어찌 된 일일까요

숨은 막혀오는데 탈출하라는 말은

들리지 않습니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나고 며칠이 지나도

“탈출하라”라는 말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우리 착한 아이들은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쳐 잠들고 말았습니다

엄마가, 아빠가 불러도 불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배는 가라앉고, 부푼 제주로의 수학여행

세월호, 이 배는 언제쯤 다시 출발하나요

교감 선생님과 우리 아이들을

사랑하고 사랑한 선생님들

불러도 불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 진도의 무심한 침묵의 바다여!

하늘엔 슬픈 빛의 별빛만 총총하네요

우리 착한 아이들은

“가만히 있으라”라는 어른들의 말을

잘 들은 죄밖에 없습니다.

 

2,  공덕동 175번지

 

                최영희

 

그대는 아시는지요?

마포구 공덕동 175번지,

더 자세히는 공덕동 175-100번지

한 생이 길다 해도

사 반세기면 그중에

반의반은 되겠지요

 

그 번지 그 집에서

아이들은 초. . . 대학교를 졸업하고

큰아들은 장가들어 손주까지 얻었으니

그곳을 잊겠는가

떠났다고 잊겠는가

 

떠나 온 지 10여 년

-, 이제도 오며 가며 눈()이 가는

아파트 숲을 이룬

- , 저곳

마포구 공덕동 175번지

 

떠났다고 잊히겠는가

우리 집 다섯 식구

25년 긴긴 세월 자고새던 보금자리

미용실, 정육점, 마트, 떡볶이장수까지,,,

나고 들던 골목길의 그 추억, 그리고

- 이웃들을,,,            

 

 *마포문화원 삼개시낭송모음집 제100회 기념집 출품작

 

3, 가을

 

                      최영희

 

그대는 멀리 있고

숲 속의 길은 비어만 가는데

 

오늘따라 풀벌레들

-언 곳 그리움까지

여기로 불러

늦게 핀 풀꽃들도

내 맘처럼 촉촉하고

계절은 다시 저무는데

 

잠자리떼 나는

하늘은

참 청명도 하다. 

 

 

 4, 까똑이 

 

                        최영희

 

지금 여기는 지하철 안이다

아까 우리가 우르르 몰려들 때

함께 올랐나 보다

여기서도 까똑! 저기서도 까똑!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귀여운 목소리로

나풀나풀 팔랑팔랑

오빠 언니 아저씨 아줌마

이번엔 할아버지 할머니께

갔나 보다, 까똑! 까똑!

- 고놈, -.

부지런하다 바지런하다

내가 잠잘 때도 까똑 까똑

밥 먹을 때도 까똑 까똑

길 나설 때도 까똑 까똑

때론 귀찮다가도

까똑! 까똑! 예쁜 목소리

- 고것,

-.

 

5, 겨울나무 숲에서 

 

                     최영희

 

겨울나무 가지 사이

햇살이 눈 부시다

 

계절도 우리의 삶과 같아서

비우고 비우니

저리도 말끔한 것을

저리도 홀가분한 것을

 

12, 겨울나무 숲에 가보자

지금은 참선 중

저 고요를 깨지 말라

생의 한 굽이를 넘어가는

은하의 시간 속에서

이제 마음의 하나까지

비워야 한다

오직 사랑을 위하여!

 

겨울나무 가지 사이

맑은 햇살,

칼끝에서보다 더 섬세하다.

  

6, 꽃씨 한 톨 

 

               최영희

 

지인이 건네준 나팔 꽃씨 한 톨, 내 안에 들린다 곰실곰실 생명의 소리

그 안에 생명을 싸고 있는 두텁고 까만 생()과 사() 사이의 벽, 어쩌면 그것은

스스로 뚫어야 할 운명 같은 것, 배란다 양지쪽 화분에 씨앗을 심고 흙 속을

가만히 들여 다 본다 귀를 대 본다 그 속에 내가 태어난 본향 그 우주가 보인다

지금, 씨앗은 내가 그랬듯 꼼지락 꼼지락 탯줄을 잡고 있을 게다 씨앗은 다시

조금씩 빛을 타고 오르겠다 드디어 오늘 아침 내 어머니 그 아픈 자궁 문이 열리듯

화분 속의 흙은 세상과의 빗장을 열고,

 

-옥 내미는 머리

푸른 빛, 생명이다

벅찬 탄생이다

- 저 눈에 비치는 세상

내가 처음 본 그 세상이겠다

그 세상, 꽃 피겠다.

 

7, 그대는 참 곱다

 

                    최영희

 

가을, 그대는

참 곱다

 

겨울 지나

봄부터

햇살 따라 바람 따라

사분사분

준비하고 싹 틔우고

푸르고 열매 맺고

한 생을 다 했는가

 

아름다운

떠날 채비

 

그 모습

참 곱다

꽃보다 곱다.

 

검은 가지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나는 주어진 시간만큼 원 없이 사랑했노라."라는

그대의 엽서 같은

빨간 노란 남은 잎은

그대, 올 때보다 곱다

떠나는 모습이 더 아름다운

그대는,

참 곱다

 

8, 그네를 탄다

 

                최영희

 

 

저물녘,

-빈 놀이터, 별들은 하나 둘

제집을 찾아들고

하늘과 땅 광활한 공간

나는 그네를 탄다

공중 높이 오를수록

오래전 시간의 순간순간들이

보일 듯, 보일 듯,,,

 

별들은 한참 전

잠에 든 듯 고요한데

보석인 듯 보듬었던

나의 그 순정(純情)한 추억의 시간마저

한 점 한 점 멀어져 가고

어느새 이순의 고개도 넘은 지 오래

 

이제 가벼워져야 한다

좀 더 가벼워지기 위해

나는 지금 그네를 탄다

엄마 등처럼 착하디착한

바람의 등에 업혀. 

 

9, 물의 노래

 

                         최영희

 

 

물이 노래하는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

내 고향이 그랬다, 봄이면 봄마다 여름철 내내

가을, 그리고 겨울,,,

 

노래하듯 흐르고 흐르던 물의 고향 나의 고향

우물가 도란도란 감자 깎던 너와 나, 그리고

순이랑 옥이는 아직 그림자로 예쁘게 앉아 있고

도랑 따라 물길 따라

! ! 두들겨 헹구던 빨래터

순이 엄마, 덕이 엄마 가난한 모습도

정으로 그리운데,

 

돌아온 길

물도 가고 사람도 가고

내 고향 침묵의 우물가

끝내 노래를 잃었구나. 

 

10, 그 밭에서 

 

                 최영희

  

내가 아는 어느 시인은

시를 얻기 위해

시의 밭을 일군다 했다

토마토, 수박, 감자,

포도, 푸른 채소

 

시인은 푸른 시를 얻기 위해

영근 시를 얻기 위해

오늘도 밭으로

나갔겠다

구슬땀을 흘렸겠다

 

그 시인의 밭

땅속,

그리고 공간 속

진주 같은 시의 열매

날마다,

날마다 자라겠다

오늘은 어떤 맛의 시

수확했을까.

 

11, 가을 음악회

 

               최영희 

 

가을 숲 속 연미복 차려입은

당신은,

멋진 지휘자

사랑하는 그대와 나를 위한

연주는 시작된다

 

낮은 저음의 첼로 연주를 시작으로

바람의 바이올린,

- 사이사이 톡톡 끊어 올리는 비올라

현악 4중주의 하모니

흐르듯

밀려갔다 밀려오는

계절의 소리여!

 

더러는 누군가가 두드리는

타악기 소리도 들린다

난타다, 시원하다

먹구름은 밀려가고

나의 꿈은 날아오른다

 

환상이면 어떠랴

가자,

기꺼이 가자

그대와 나, ()

무엇인가가 있을 것 같은

저 소리의 숲으로,,,

 

12, 가을 속에서 

 

             최영희

 

하늘은 맑고

거리마다

우수수---

빨간, 노란

나뭇잎

별처럼 내려앉는,

 

- 저 길을 돌아, 돌아

 

한 사람 걸어가네

, 한 사람 걸어가네

모두가 그리움을 노래하는

시인처럼 걸어가네

 

그대, 그리고 나

붉은 잎 뚝! ! 떨어지는

단풍나무 아래

다하지 못한 사랑

선 채로 불러 보네

바람은 불고.   

 

13, 국화꽃밭에서

 

          최영희

 

 

가을날, 국화꽃

서리 같은 향기로 피었다

 

세 명의 여류 시인

-언 길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서정주님의 그때 그 누님처럼

국화 꽃잎 속, 앉아 본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고 노래한

미당 서정주님의,

노오란 국화 향기 속

 

-언 산으로부터

시인의 80%를 키웠다는

바람은 불고

우리는 여기, 다시

그리움을 노래하는

고독한 시인들,  

 

14, 내 안의 큰 우물

 

         최영희

 

 

나무가 푸르다 한들

근원은 뿌리인 것을

 

, 잎마다

하늘의 자유를 누린다고

뿌리를 잊을 수 있을까

 

내 안에 흐르는

수액을 따라

가보나 마나

한 우물 있었네

큰 우물 있었네

내 안에 홀로 가여운

아버지 큰 사랑

가보나 마나

이제도,

달빛처럼 출렁이네.  

 

15, 고향, 그 마을 

 

                  최영희

 

밥 짓는 하얀 연기

엄마의 사랑처럼 모락모락 피어나는

나지막한 집들이 정겨운, 산 아래 그 마을이

우리 함께 뛰고 놀던 고향 마을입니다

 

- 그곳이 그리워라

마당 한편,

아버지는 화단 밭을 일구고

나는 봉숭아, 백일홍, 채송화,

꽃씨 뿌려, 꽃이 피면

꽃과 놀고 나비와 놀고

 

밤이면 마당에 멍석 깔고

순이랑 옥이도 불러 별을 헤며 노래하면

산등성을 넘던 달도 엄마처럼 웃어주던

산 아래 나지막한 초가집들

도란도란 정겨운, 그 마을이

우리 고향입니다

죽어서도 잊지 못할

너와 나의 고향입니다.

  

 16, ()길 위에서 

 

                   최영희

 

길의 끝이

어딘지 모르겠다

저 하얀 길 위로

자박자박

발자국 소리 들린다

 

꽃밭으로 간 발자국소리

바다로 간 발자국소리

하늘로 간 발자국소리.  

 

17, 모두가 행복한 세상  

 

                      최영희

 

나는 가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

드넓은 대지 위에 끝없는 푸른 들판

평온의 그, 대지 위에

작은 풀잎과 꽃들이

서로를 보듬듯 피어나고 

따스한 햇살과 보드라운 바람결

그 위에 다시

나비가 꽃과 꽃을 오가며

한가로이 춤을 추고

가끔은 새들이 노래하듯 지저귀는,

 

네가 있어 내가 행복하고

내가 있어 네가 행복한

세상, 그 세상이

 

우리들의 세상이면 좋겠다

우리, 사람의 세상이면 좋겠다. 

  

 18, 나는 대한민국 

 

                    최영희

 

“나는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광복 70주년을 맞는 행사명이다

2015 8 15,

상암동 올림픽경기장에선

세대와 세대

계층과 계층

하나 될 수 없을 것 같았던 사람들까지

한자리에 섰다

 

손에 손을 맞잡고

한목소리로 노래한다

사랑을 노래하고

화합을 노래하고

통일을 노래한다

감동이다!

 

무대와 객석이 따로 없다

해방둥이. 4.19세대. 산업화세대

디지털세대.

광복 후 70, 

우리 그렇게 살았습니다

 

앞만 보고 뛰느라

돌아볼 겨를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고 보니

우리는 하나였습니다

 

보릿고개 그 어렵던 시절에서부터

세계 경제 10위권 안() 대한민국으로

우뚝 선 지금까지

우리는 함께했습니다

 

합창단들의 합창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객석 가운데 대형 태극기가 펼쳐지고

애국가가 울려 퍼집니다

모두가 벅찬 감동!

대한민국은 하나였습니다

 

우리는 저 안()에 하나입니다.  

 

 

19, 이 땅에 어머니가 없었습니다  

 

                         최영희

 

내 나이 일곱 살에

어머니 가시고

내겐 이 땅에 어머니가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없는 세상이지만

내겐 하늘에 별이 있었습니다

엄마는 떠나는 날, 내게

“하늘에 별이 되겠노라.

약속하셨습니다

 

나는 그날 밤 이후로는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땐

하늘에 별을 쳐다보았습니다

 

하늘에 별이 된 엄마는,

“슬퍼하지 마라,

외롭다 하지 마라”

언제나 반-, -,

내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여기에 있고

언제나 네 곁에 있으며

너를 지켜보고 있다”

 

60여 년의 세월,

엄마는,

그렇게 내 곁에 별로 계시고

나는, 일곱 살 난

엄마의 딸로 있습니다

지금도 ‘엄마, 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나는.        

 

 

 20, 한섬카페

      -동해 천곡동-

 

            최영희

 

동해의 낭만 굽이굽이 천곡동

산 중, 외딴 집 한 채“한섬카페”

밤은 깊어 천지는 고요하고

달빛에 비친

카페 여인의 눈()빛 같은 하얀 미소

그 카페, 그 여인

자꾸 생각이 난다

 

불빛 아래

켜켜이 쌓인 고서(古書)

여인의 내면 인양

문향(文香)이 가득하고,

월하의 여인일까

여인의 사연 머금은 잔잔한 눈빛

마주한 커피잔에 그득하다

 

동해의 산 중, 외딴 집 한 채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차를 달이던 달빛 아래 그 여인

자꾸, 생각이 난다.

 

*2015년 한국시인협회 사화집 원고

 

  

21, 단양쑥부쟁이

- 내 고향 단양쑥부쟁이 멸종 위기 소식을 듣고-

 

                                   최영희

 

그래, 이제 보니 너와 나는 동향이었구나

- 내 고향 단양의 보랏빛 쑥부쟁이야!

 

멀리 떠나와 살아도 너와 나 고향의 산바람 강바람, 그리고

흙냄새야 잊을 수 있을까, 바람 가고 구름 가고 세월이 가도

우리들 고향이야 그대로 천 년, 바람 따라 물길 따라 흘렀을까

나는 서울 땅, 너는 남한강 하류 여주쯤 뿌리 내려보려 애를 썼구나

 

잎도 솔잎처럼 가늘어 솔잎 쑥부쟁이라 불리기도 했다지

모래땅에서도 잘 견디고 멀뚱하니 키는 커도

바람에도 꼿꼿이 잘 견디는 세계에서도 유일하다는

내 고향, 단양의 쑥부쟁이야!

다시, 남한강 개발로 네 뿌리가 위태롭구나

 

견디고 견디어라, 강하게 살아라

설혹 단양 땅이 아니어도 내 조국 어디라도 좋겠다

, , 바닷가, 강가, 어디서고 강하게 살아남아

철 따라 우리 강산 너로 하여 온통 보랏빛이어도 나는 좋겠다.

  

22, 들길을 걸으며  

 

                     최영희

 

산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들길

 

욕심 없는 풀들이

하늘하늘 바람을 불러

풀숲 사이 한가로운데

 

푸드득 산새 한 마리

날아오르고,,,

 

풀 내음, 꽃 내음

가는 이, 오는 이 반겨 맞는

이 착한 들길

그대는 걸어 보셨는지요.  

 

23, 딸에게 쓰는 편지 

                            최영희

 

세상에서 내게 그 어느 꽃보다 아름다운

사랑스러운 내 딸아

엄마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때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생각했다

나에게 진정 엄마의 마음을 알게 해 준

사랑스러운 내 딸아

긴 진통의 바다를 건너

내 앞에 천사처럼 숨소리도 고르게

잠에 들었던 아가야

몇 겁의 인연의 바다를 건너

나는 엄마의 딸, 너는 이 엄마의 딸로

세상에서 만났을까

딸아, 이제

우리는 얼마나 사랑하며 또 얼마나 아파하며

우리 앞에 놓인 이 생의 바다를 함께 건너야 할까

그러다, 우리 그러다 어느 날 내가 너의 잡은 손을 놓았을 때

아마, 네 곁에는 지금 너와 같이 너의 딸이

너의 손을 잡고 이 바다를 건너고 있을게야

그때는 엄마의 엄마가 하늘에 별이 되었듯

엄마도 엄마 곁에 작은 별이 되어 있지 않을까

사랑하는 내 딸아

우리 하늘에 감사하자,

먼 옛날 우리 기억 속에 그들이 그랬듯

우리 이렇게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엄마와 딸로 만나

가슴에 뜨거운 돌 하나 품은 듯 뜨겁게,

뜨겁게 사랑하며 살다 감을,,,

 

24, 들풀   

 

             최영희

 

들풀처럼 이 땅을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이 하늘을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선 곳이 자리한 곳이 척박하면 어떠랴

그 순박한 옷차림을 보아라

선한 눈빛을 보아라

푸른 빛만으로도

족하다 하지 않느냐

 

들풀처럼 순박한 마음으로

살아 본 적이 있는가

바람 불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내일이면 푸르게, 더 푸르게 일어나

다시, 푸른빛으로 살아가는

소박한 행복

 

금관이 아니면 어떠랴

작은 꽃으로 풀꽃 관을 만들어

사랑하는 이에게 얹어 주고

송이송이 작은 풀꽃 모아

한 줌 건네며

서로를 위로하는,,,

 

-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 그랬으면 좋겠다.  

 

25, 도시를 떠나 보자 

 

                               최영희


기계음 소리 자동차 굴러가는 소리
거리는 달아오르고
오늘도 빌딩 숲은 철탑처럼 솟아오른다

아이야! 우리 가끔은 도시를 떠나 보자
완행으로 가는 느린 기차면 더 좋겠다


물소리 새 소리, 저 산과 들

그리고 하늘을 보아라

곡식과 풀과 꽃들은 다투지 않고도

제 몫으로 자라고 영글고, 밤이 되면

태양은 별과 달에 하늘을 내어주고
평화로운 휴식을 한다


고요한 밤에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밤을 위한 전주곡처럼 평화롭지 않느냐


물고기도 잠든 듯 고요하고
별들이 호수 속으로 싸락눈처럼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한여름 밤


너와 나의 이야기가 

별빛처럼 만나는 곳

우리 가끔은 도시를 떠나 보자.  

 

 

26, 망초꽃  

 

                  최영희

 

망초꽃, 꽃말이 ‘화해, 라는 데,,, 구한말 개항(1876) 이후 유입되어

들과 산 곳곳 낯선 풀 낯선 꽃, 나고 나고 또 나고 뽑아내면 또 나고

하필이면 경술국치(1910)쯤에 전국을 번져가니 ‘나라를 망하게 하는 풀, 이라는

오명을 쓰고 저놈이 “망국의 풀이다.” “망국의 꽃이다.”라고 얻은 이름

망초! 망초! 망초꽃! 이래도 웃고 저래도 웃고 숨죽이며 살아 낸 삶

어느덧 100여 년, 이제는 이 나라 이 땅 곳곳 피고 지고, 푸른 잎은 나물로

하얀 꽃은 너도나도 좋아라네, 어수룩한 풀밭 사이 어디선가 나는 향기

망초 꽃의 향기였네, 나면 뽑고 나면 뽑고 서러운 맘 없었을까만

누군가 붙여준 꽃말, ‘화해,

 

하얀 꽃, 향기 가득

망초, 망초, 망초꽃!

 

이곳저곳 착하게도 웃는구나

‘화해,의 미소구나,

모든 설움 덜어낸 미소구나

향기구나.  

*망초에 대한 위키백과 참조-

 

27, 빵집이 있는 마을

 

                    최영희

 

빵집이 있는 마을은 행복한 마을

진열장에 정돈된 노릇노릇 잘 구워진 빵들

분명 오늘도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것이다

내가 빵집에 들어섰을 때

내 생각대로 빵집 아가씨 미소가

잘 구워진 소보로빵처럼 부드럽다

 5개를 고르고 계산을 하려는데

나보다 먼저 들어온 작업복의 청년

내가 나가기를 기다리는 눈치다

배가 고픈데 가진 돈이 없는 모양이다

빵을 얻으려는 눈치다

종업원인 듯한 미소 아가씨 곤란한 눈빛이다

청년의 표정은 애틋하고 배가 고프다

난 내가 산 빵 중에 2개를 건네주었다

영하 12 12월이었다

 2개 정도면 고픈 배는 달랠 수 있겠다

빵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베푸신 생명의 양식

빵집이 있는 마을은 행복한 마을.    

 

28,봄날은 그렇게 간다  

 

                   최영희

  

, 지나는 길목

하얀 목련 꽃

한 잎씩 날면

봄날은 간다

봄날이 간다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던 맹세는

하얀 꽃잎 위

헛맹세의 자국으로 남고

 

나는 다시 사랑하기 위해

이 슬픈 길을 돌아, 저만치

기억의 푸른 섬으로 있을 것 같은

내 안의 몽마르트르

그 언덕을 오른다.

 

29, 봄은 참 곱게도 옵니다

 

                 최영희

 

봄은 언제나

참 곱게도 옵니다

 

나는 지금 강둑을 걷고 있습니다

묶은 풀숲 사이

별꽃이 피었습니다

손톱보다 작은,

봄이면 봄마다 온다지만

참 먼 세상 돌아

이 땅에 온 듯

신비한 눈빛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어느 세상으로 가고 있는지요

지금은 강둑을 걷고 있습니다

저 별꽃!

나처럼 어느 강둑도 걸었을까요

그리고 봄날,

참 곱게도 왔습니다

봄과 함께

곱게도 왔습니다

양지쪽 옹기종기, 눈빛이

아기만 같습니다

봄은 오고

나는 지금 강둑을 걷고 있습니다.

 

30, 바람의 춤 

 

                     최영희

 

봄이 일어나는

골짜기를 지나면

그대 부르던 노랫소리

귓결을 스치고

바람은 춤을 춘다

무언의 춤을 춘다

 

하나의 바람이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하면

모든 기억은

물결처럼 출렁이고

푸른 빛, 나의 그리움

너의 그리움

 

바람이 춤을 춘다

- 봄날에 이는

저 바람의 출렁임은

우리 사랑했던 기억의

몸짓이겠다.

 

31,바다로 가는 길  

 

                    최영희

 

한 방울 한 방울

링거액,

무색무취의 링거 줄을 타고

나의 바다를 가고 있다

시곗바늘처럼

, ,

규칙적으로

 

아직은 기쁨으로

살아 있는, 나의 바다

꿈이 살아 있고

기억이 살아 있고

추억이 살아 있고

 

탱글탱글, 첨벙첨벙

링거액의 즐거운 여행이다

 

나는 오늘

살아 있음의 축복으로

링거액으로 하여금

나만의 바다

그 깊은 곳의

여행을 허락한다.

 

32, 밥에 대한 시학(詩學)

     -밥 한 번 먹읍시다-     / 최영희

 

우리 같이

-밥 한 번 먹읍시다-

하루에도 두 번 아니면 세 번은 먹는 밥

밥은, 그냥 밥인가 했다

 

그런데,

, 우리 같이

-밥 한 번 먹읍시다- 

그냥 그 밥이 아니더랍니다

 

우리, 가 들어가서인지

같이, 가 들어가서인지

그 밥에서는 왠지

김이 모락모락 날 것만 같고

따듯할 것만 같고,,,

 

그냥, 둥그런 생각이 자꾸 나더라구요.

 

33, 봄날

 

             최영희 


봄날은 이쁘다
돌아보면 나의 봄날도 그랬다
저 파릇이 돋아나는 초록을 보아라
저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아라

 

꿈으로 가득한,
- 저 어린 눈()
봄날은 이쁘다
나의 어린 날도 그랬다.

 

 

34, 바이러스(virus)

   - 사랑-

                           최영희

  

눈으로 봐서는 보이지도 않는 것()

그 힘은 대단한 가벼!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놈이

`사랑, 이란 놈이 아닌가 싶다

고놈이 심장에 침입해서 자라기 시작하면

아무도 못 말리는 폭발적 힘을 과시한다는데

때로,

여리고 작은놈을 보면

가슴팍을 다 열어 안아 주고 싶고

이쁜 것, 슬픈 것, 가여운 것,

이런 모든 것이 깊이 보면 다 눈물이 난다는데

이쁜 건 이뻐서 눈물이 나고

슬픈 건 슬퍼서 눈물이 나고

가여운 건 가여워서 눈물이 난단다

고놈의 바이러스란 놈

감염되지 않고는 그 힘은 모른다는데

고런 바이러스는 감염되어

내 안에 푹! ! 자라도 좋겠다

눈물 한 번 푹! ! 쏟아 내고 싶다.

 

35, 바이러스(virus)

    -행복-               

                   최영희

 

 

스스로 행복(happy)해지는

바이러스(virus)가 있다기에

, 그 바이러스에 감염되려고 접근을 했다

본래 바이러스는

어디고 감염시키는 것을 좋아해

접근하는 것을 밀어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바이러스가

내 안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많은 수련이 필요하다

그 수련을 거치고 나면

스스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게 되고

세상에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진 것 없어도 행복해하는 풀꽃이 그렇고

여름날 제 몸을 살라 그늘을 만들어 주는

산에, 들에, 거리에, 나무들의 착함이 그렇고

푸른 하늘이 그렇고,

밤하늘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도 그렇다

나는 오늘도 그들의 순수함에서 착함에서

스스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배운다.          

 

36, 새해의 소망

 

                    최영희

 

올해도 많이 사랑하는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아픔이 없는 세상

거짓말이 없는 세상

작은 풀잎 하나라도

상처받지 않는 세상

꿈으로 가득한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의 새싹, 어린 천사들이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추위에 떠는 우리 가난한 이웃이

모두, 모두 꿈을 가지고

새날을 맞는 희망이 가득한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돌아보고 반성할 일은 없는지

부끄러운 발자국은 남기지 않았는지

새해 첫날

소망으로 가득한

태양이 힘차게 솟아올랐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희망의 동산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2014.12.26발행  영등포구청 소식지 신년 권두시

 

37, 사람들은 나를,
     -행복 찾기 1-
                        최영희

 

사람들은 나를 시인이라 불러 주네

 

작은 언덕 돋아난 풀잎과
풀숲 사이 살폿, 수줍은 작은 꽃
그 소박함을 화려함보다 사랑한
촌티 나는 사람,
그런 나를
사람들은
시인이라 불러 주네.          

 

38, 색동저고리

 

          최영희

  

그때는 몰랐습니다

 

색동저고리, 곱게

차려 입히시고

곱다, 곱다

얼러주시던

어머니,

그 환한 미소

 

그것이 얼마나

큰 사랑이었는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39, 세종대왕

 

                최영희 

  

임금님, 우리말 우리글이 세상에 태어난 지 600
년의 시간이 흘렀사옵니다. 임금님께서 백성을 사랑하사
나랏말쌈을 맹그시어 백성 가운데 놓아두시고 누구나
배우고 익혀 네 것으로 하라, 하신 임금님의 큰 사랑
백성 안에 영원하십니다. 천 년이 흐르고 만 년, 아니
수억 년이 흘러도, 임금님이 백성을 사랑하사 맹글어
선포하신 나랏말쌈, 우리글 훈민정음이여!  

 

우리 엄마 나라 뺏긴 나라 없는 나라에 태어나
글을 알아야 눈이 밝아진다, 시며 야학에서 배운
가갸 거겨 고교 구규,,, 내 머리맡 등잔불 아래
익히시고 하늘나라 가셨네. 임금님은 백성을 사랑
하사 글 모르는 어린* 백성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
우리글을 모두에게 주셨네. 삐뚤빼뚤 따라 쓰던 우
리 엄마 가갸 거겨 고교 구규,,,우리 엄마 대왕의
나라 백성이라고, 저승길에 이름자는 올렸겠네 

 

- 대왕이시여! 이제 대왕의 나라 백성이면 우리말
우리글 모르는 자 있겠는지요. 거리에도 차창 밖에도
언문이라 설움 받던, 아름다운 우리말 우리글 꽃으로
피었습니다, 꽃잎만 같습니다, 무궁무진 피겠습니다.
- 백성을 사랑하사 모든 백성 눈을 뜨게 하신 크고도
크신 우리들의 왕이시여! 

 

*어린; <옛말> 어리석다. 

 

40, 외줄  

 

              최영희

 

내가 아는 이웃집 지하방

올망졸망 세 아이 아빠인

그 남자는, 오늘도

언제나처럼 해를 바라보며

수십 층 꼭대기에 오른다

- 트인, 시야에 들어오는 세상

날아도 보고 싶다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없는 공간

그만의 특권인지 모르겠다

오늘도, 그 남자

외줄에 목숨 끈을 매달고

세상을 날 듯이 밟아 볼 심산이다

한 발 한 발, 나비보다 여윈 발로

그 남자, 곧추선 벽을 밟기 시작한다

- 칙 쓱- 

아무리 우뚝하던 세상도

그 남자가 한 번 스치고 지나면

꼼짝없이 변신을 시작한다

그와 맞닿은 거대한 세상

오늘은 그 남자 손에 달려 있다

바뀐다, 그 남자 손에

세상의 그림이 바뀐다

통쾌한 변신이다, 이것이

그가 외줄에 목숨을 거는 이유다

그의 자존심이다

세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착한 여자의 남자, 오늘도 기꺼이

허공 속 외줄에 목숨을 건다.//2013.03.16

 

41, 여행() 길에서1

    ㅡ 죽서루

                        최영희

 

죽서루에 올라보니

오십천 맑은 물길

발아래 고요하고

 

선인들 머문 흔적 댓()바람에 이는구나

 

관동의 기암절벽

한 풍경을 이루고

절경을 읊은 시객(詩客)

누각에 선 듯,

이제도 선연한데

 

바람 따라 서고 보니

- 여기,

필적으로 남은 시객(詩客)

임인 듯 그립구나.                 

 

* 죽서루: 강원도 삼척에 위치한 관동팔경의 제 일루(보물 213)

고려 원종 7(1266) 고려 때 학자 이승휴가 서루에 올라 글을 남겼다는

기록을 미루어 그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한다. 라 했음.

 

42, 그 태양이 솟고 있다

 

         최영희

 

께서 하신 약속은 정확하다

처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적

내게 하신 약속

아침이면 어김없이 네게 태양을 보내 주겠다

그리고 밤이면 달, 그리고 별을 네게 있게 하겠다

봄이면 새로운 싹을 돋게 하고

여름이면 세상을 푸르게,

겨울이면 하얀 세상, 다시 새롭게 하겠다

은 한 번도 그 약속을 저버린 적이 없다

 

이 하신 아름다운 약속

오늘 아침도 약속의 그 태양이 솟고 있다

세상이 변하고 변해도

의 그 믿음의 약속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약속의 이 아름다운 세상

오늘도 저 창 밖으로 벅차고 벅찬

의 태양이 솟고 있다

- 오늘도 나는 살아

감사히,

아름다운 그 약속을 만나고 있다. 

 

43, 새벽

 

         최영희

 

시작은 꿈이 있어 아름답다

태양의 시작을 보라

- 저 꿈꾸는

발그스름한 수줍음이고서야!

얼마나 청초한 시작인가

 

맑고 아름다움의 시작

나는 이순을 넘고서야

저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순한 마음이 되나 보다

 

다시 아침을 여는

저 새벽의 아름다운 진실을,,,

 

44,여름날

 

                  최영희

  

여름은 아직도

지치도록 푸르른데

 

젊은 날은

저만치 

바람따라 서성이고

 

해는

서둘러 넘었는가

서녘이 붉어 온다.        

 

 

45, 어머니  

 

                        최영희

  

어머니는 가슴 속 자리한

영원한 그리움

 

어머니는

언제나 그곳에 그렇게 계시는

우리들 영원한 고향

 

사노라 힘겹고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어머니는, 영원한

마음의 고향.                

 

46, 어느 노() 부부 

 

                       최영희

  

꽃다울 적 만났겠지요

노을을 등에 진 () 부부

지상에서의 아름다움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한적한 공원 낡은 의자 위

지는 해를 바라보는 꼭 잡은 손

우리들 누군가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이시겠지요

 

세상의 얼마를 돌아

예까지 오셨습니까

 

서로를 부축하며 가십니다

지는 해를 향해 가십니다

 

이제 더 어디로 가십니까

함께 잡은 손 눈물 나게 아름답습니다

노을은 붉게 타오르고,,,              

  

47,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최영희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 사이에 있는 것은
바람이었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
그리움 남기고
- 나는 다시
바람과 바람
그 사이를 간다

 

별빛 같은 꿈을 꾸며
내일이라는 미지를 향해
오늘을 간다.                  

  

48,  여행()길에서 2

     -북쪽, 끝 마을

 

                        최영희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북쪽

끝 마을, 산도 마을도 고요하다

너른 들판 벼들이 익어 가고

과실수마다 과실이 주렁주렁

올가을 풍년이겠다

 

들로 산으로 난 국토 길 따라서 가다 보면

- 슬픈 곳,  "여기서 멈추시오"

산은 그대로 푸르고 푸른데

노루도 토끼도 오고 가는 철책선 하나 걸쳐 놓고

사람만 못 간단다

 

! ! 문 두드리면 저 능선 아래

북쪽 사람들, “뉘 시오.” 하고

문 열고 웃으며 나올 것 같은데

 

푸른 산허리 두른 철조망 걷어 내고

이대로 저 산을 넘어 백두까지 달릴 수만 있다면

60년 막힌 가슴, - 숨통 좀 트이겠다

 

 

그때는 침묵으로 있는 저 산도 하늘도

번쩍! 눈을 뜨고,

함께 일어나 손뼉치며 함뿍 웃겠다.

 

49, 아버지 집 가는 날 

 

                            최영희


오늘은 아버지 집 가는 날
강원도 산골짝, 스스로 길을 내야 오르는 길
내 생전 몇 번이나 다시 오를까
올해도 봄 왔다고 홑잎도 삐죽삐죽 자라 오르고
씀바귀도 노란 꽃을 피웠는데, 사람은 처음인 갑다
새들이 놀란 듯 푸드득 날아오른다
미물도 죽을 때는 고향으로 머리를 둔다는데
조상님들 대대로 묻힌 고향 땅 영주*에는
못 가실 줄 알으시고,
이곳은 깊어서 싫다시던, 외로워서 싫다시던
울 아버지, 여기에다 모셔 놓고
오랜만에 술 한 잔을 올려도,,,
딸아, 딸아, 일흔을 바라보는 이쁜 딸아!
백골이 웃으신다, 환히도 웃으신다
저리도 좋으신데,
이 딸마저 아니 오면, 울 아버지
외로워서 어이 할꼬.

  *영주: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경상북도 영주.

 

50, 이종 언니 

 

                     최영희

 

누구라도 내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 보세요

나는 신이 나서

고향 자랑, 할 수 있어요

산천이 변하고

물길도 변했지만

내 가슴 속

진달래 개나리 곱게 피어나는 곳

나에게 하나뿐인

이종 언니

고향을 지키고 있어요

“나 있을 적 내려와라,

그래야, 된장찌개 따순밥 한 끼라도

먹고 가지야."

누구라도 내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 보세요

, 아직

따순밥 한 술 해줄

이종 언니

고향에 있다, 자랑할래요.        

 

 

51, 일식(日蝕)

 

               최영희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그대가 그렇게 내 곁에서

그림자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질 못했습니다
만약 그대 오늘처럼 그대 있어야 할 자리에
흔적 없이 사라지는 일이 다시 있다면
그리고 영영 다시 볼 수 없다면
세상은 끝이 나고 모든 것은 일시에
널브러진 시체처럼 누워 버리고
나의 세상은 온통 무덤이 되겠지요
세상은 그런 당신을 보고
수십 년 만에 보는 우주의 쇼라 합니다
그러나 난, 당신의 메시지라 생각합니다
세상은 언제나 한결같진 않다
순식간에 광명천지가 암흑의 세상이 될 수도 있다
사랑하고 사랑하라
시기하고 질투하지 말라
평화의 소중함을 알라
평온한 질서 속에 행복이 있었다는 것을 알라, 하시곤
빙긋이 웃으시며 나투시는 임,
아ㅡ 그제사

세상은 안심하고 평상으로 돌아갑니다

하늘엔 당신이 계십니다.                    

 

 

52, 오래된 것에 대하여 

 

                   최영희

 

나는 알고 있다

별이 왜 그리 멀리서

빛을 보내며

혼자서 반짝이는지

 

사막에서 생명에 대한

끝없는 갈망으로

오아시스를 만들어 내듯이

별은 오래된 것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긴 세월 잊히지 않는

잠시 스친 것에 대한 열망,

 

추위와 더위를 번갈아

불어대는 바람이 그렇고

풀잎과 꽃잎이 그렇고

이웃하던 사람과 사람이 그렇고

내 살던 집과 마을이 그렇고

모두가 순간 스치고 지난 것들이

잊히지 않는 걸 보면 안다

 

별이 천 년토록 눈이 부신 건

오래된 것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53, 이 풍성한 가을에

 

          최영희

 

이 가을

내가 지나온 저잣길

저 풍성한 과일과 알곡

누구의 땀과 눈물이었나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 땀과 눈물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 가을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준

신께도 감사의 마음을 올린다

 

이 풍성한 가을

, 신의 축복이 아니던가.        

 

54, 저물녘, 강가에서

 

                최영희

 

 

물이 흐른다

흐르는 세월처럼 물이 흐른다

저문 강이 흐른다

 

흐르는 물 위에

종이배 한 척 띄우고

가슴마다 쌓아 둔

사랑도 싣고

추억도 싣는다

물이 흐른다

노래하며 흐른다

흐르는 노랫소리마다

사랑이 떠가고 추억이 떠간다

꽃잎처럼

우리들, ()이 떠간다

 

해는 저물고,

한둘 그때 그 별들이 찾아와

등을 토닥인다

우리 꿈꾸던 그때처럼,,,

 

55,진달래꽃잎 차()

 

                 최영희

 

어떤 차() 전문가는

산에서 따온 진달래를

설탕 1:1 비율로 켜켜이 쌓아 절여

진달래꽃잎 차를 만든다 했다

 

그리고 차를 마실 때는

꽃잎이 담긴 액()차에 뜨거운 물을 부어

꽃잎이 피어나길 기다려 마신다 했다

 

-, 피어난 꽃잎, 얼마나 향기로울까

 

, 차마

고향의 뒷산 그 진달래

아리도록 그리운 그 눈빛 지울 수 없어

바라보다, 바라보다, 그냥 바라만 보다

! ! 눈물처럼 꽃잎 지우면

- , 손으로 받아

내 가슴에 재우리라

 

그러다 문득문득

몹시도 그리우면

하얀 백자로 된 찻잔에

진달래꽃 한 잎, 그리고 

그리움일랑 향으로 띄워 놓고

내 고향 뒷산 그 진달래

피어나길 기다리리라.          

 

56, 제주 돌문화 공원에서

 

           최영희

 

제주, 돌문화 공원

이곳에 와보지 않고는

지상에서

우주의 역사를 말하지 마라

 

무한한 우주의 시간 속

아주 오랜 세월 살아오신

() 어르신들

선 채로 몸으로 들려주시는

나고 짐의

우주이야기를 듣지 않고는

“네가 살다가는

이 별나라에서의

이야기를 하지 마라”

 

제주, 돌 문화공원에 풀 나비처럼

내가 날아갔을 적

내게 들려주신

() 어르신들의 말씀이다.          

 

57, 천 년 전 시간 속으로

 

                                최영희

 

 

세월은 흘러간다지만, 역사는 흘러간다지만

경주의 토함산자락 자리한 ‘불국사, 경내를 머리 숙여 가보라

자하문(紫霞門), 다보탑 전() 흰 그림자처럼 서고 보니

1000년 전 숨 쉬던 임들의 숨소리, 발자국 소리

그리고 얼이 머물러 계신다

 

내 또한 머물렀을지도 모를

천 년 전 시간 속

 

나는,

누군가와 조근조근 이야길 나누며

경내를 돌아보니

 

신라의 바람 소리

- 이곳, 천 년이구나. 

 

58, 첫눈 오는 날 그림엽서 한 장

 

              최영희

 

첫눈 오는 날
배달된
차창 위 소복이 쌓인 눈 위에

“최영희님
첫눈이 왔어요.”라고

손가락으로 곱게 눌러 쓴
그림엽서

 

하얀 
눈 위에

그대가 눌러 쓴
내 이름 석 자

김춘수님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처럼

- 고운 이
그대는 
내게 하얀 세상
꽃이 되라 하심입니까.          

 

  

59, 풀밭에 누우면

 

                 최영희

 

풀밭에 누우면

고향이 보인다

 

아무렇게나 자란

어수룩한 풀이면 더 좋다

내 모습 그대로 누워도

예쁠,

, 고향이 보인다.          

 

60, 풀꽃 시

 

         최영희

 

 

산에 들에 피고 지는 풀꽃

화려함은 아니어도

향기는 짙어라

 

보아 주는 이 없어도

외롭지 않아

슬프지 않아

홀로 피고 홀로 져가지만

스스로 행복할 줄 아는 꽃

 

세상은 풀이라 해도

꽃은 피고

가슴으로 안은

향기,

슬프지 않아.        

  

61, 퍼즐 맞추기

 

         최영희

 

빽빽하게 산 듯한 삶 퍼즐 맞추기를 한다

골목 골목을 지나 아이들 또롱또롱한 눈망울

첫 새벽 시계 알람 소리 연탄아궁이 연탄집게

천장에 매달려 도배하는 그림까지,,,

 

그래도 완성된 무늬는

풀뿌리를 심은 듯

생명력까지 보인다

 

그리고,,, 한참을 지나

퍼즐 맞추기는 공간이 생긴다

 

중간중간 여백도 좋다

그 사이, 사이로

강가에 앉아 책 읽는 모습도

괜찮은 그림인 듯하다

 

초겨울 햇살 애써 웃는다.

 

  

62, 흘러간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최영희

 

흘러간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세상사 모든 것 지금도 흐르고

흘러간 것은

그리워,

그리워도 돌아오지 않는다

 

꽃은 피고 새 소리는 여전한데

꽃과 새는

내 시절은 몰라라네

 

신록은 푸르른데

아이는 간 곳 없고

홀로 나는 저 나비도

그 시절이 그리운가

날갯짓이 무겁구나.          

 

 

63, 행복한 기억 

 

                             최영희

  

행복한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 가슴 속 그림이 되고

그곳엔 바구니 옆에 두고 한 잎 두 잎 봄 쑥! 봄 쑥! 노래하던

봄이 있었구나, 그 아이 있었구나

논두렁 밭두렁 묵은 풀숲 사이 쏘-옥 쏘-옥 돋아나는 봄 쑥!

- 파릇! 파릇! 그 푸른 눈빛이고서야

 

- 이제라도 봄 쑥 돋아나는

그 들길을 가자, 그러면 나는 다시 행복하겠거니

그때 그 아이 만날 수 있겠거니.

 
64,민들레

 

              최영희

민들레 피어난 곳엔
외로움이 있다
쓸쓸함이 있다
슬픔을 삭이는
환한 웃음이 있다


앉아야만 보이는
여리고 작은

,

민들레

 

이 너른 세상 홀로 피었구나

엄마는 별이 되고,,,

웃어도 웃어도 슬픈 

,

민들레

 

등을 토닥여주고 싶다
곁에 있어주고 싶다.        

 

65, 편지 

 

                  최영희

 

내게는 사랑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는 날마다 내게 편지를 씁니다

그 편지는 눈으로만은 읽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 가을엔 나뭇잎마다 구절구절

가슴으로 쓴, 사랑한 이야기

난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게 슬퍼하지 말라 했습니다

우수수 낙엽으로 덮인 숲을

가만히 헤쳐 보았습니다

그는 어느새 파릇한 희망의 메시지를

검은 흙 속에 보내고 있었습니다

, 사랑이 가득한 그의 편지를

언제나 가슴으로 읽습니다

오늘은 뜨락을 지나다

목련 나무를 쳐다보았습니다

하늘은 흐리고 금방 눈이 올 것 같았지만

망울진 목련, 그는 하마

내게 봄 소식 전하고 갔습니다.

 

 

66,이 아름다운 봄날엔
-봄날의 소회(所懷)-
                                  최영희  


이 아름다운 봄날엔
흐르는 구름도 그대로 머물러 있어라

여기 풀밭에 앉은 채 쉬어가고 싶다

 

내가 밟고 자란 저 흙의 보드라움이며
천지를 초록빛으로 덮어가던 풀냄새, 그리고
저 푸른빛 하늘 하며,,,
모두 그대로 머물러 있어라

- 이 청청한 봄날엔
, 이제도 그때 그 사랑스러운

엄마 앞, 아이이고 싶다

 
푸른빛 청치마 휘둘러 입은.    


 

67, 사랑에 대하여   

 

                   최영희

  

사랑은 위대하고 아름답습니다

사랑은 한 사람을 선()으로 자라게 하고

세상 바라보는 눈을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웁니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그 안엔 나를 키운 사랑이 있습니다

 

작은 풀꽃에게서도 세상을 품어 안은

사랑을 봅니다

가난도 사랑으로 보면 따듯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세상은 따듯합니다

 

슬픔 안에서도 나는 사랑을 보았습니다

세상의 따듯함이,

사랑이,

나를 키운 때문입니다.

 

 

*내가 받은 모든 분들의 사랑에 감사하며 이글을 씁니다.

    

 

68, 2월은

 

                  최영희

 

2,
창문을 여니
어느새 봄빛이 보이네요
참 맑고 산뜻해요
청량해요

 

2월 속에 숨은 봄빛을 보세요
우리 소녀적 그때처럼
부끄러워하는 듯도 하고
설레고 있는 듯도 하고
몰래 혼자,

짧은 치마를 입고
아지랑이 사이를 오가며
콧노래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

 

봄빛 안은
2월은 늘 그래요
참 맑고 산뜻해요
우리 그때처럼

 

69,단성역

- 옛 이름 단양역-  

                            최영희

 

누군가 중앙선 열차를 타고
죽령고개 오르기 전 단성역을 지나게 되면
역사가 선 그 자리쯤
예전엔 작지만 참 평화로운 마을이 있었다는 걸
알아주세요

 

그곳엔 나지막한 집들이 키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마을 입구엔 탑이 하나 세워져 있고
아이들은 장난처럼 탑돌이를 하며 놀던 곳

 

마을 뒤쪽으로는 동굴 하나가 있고
그곳엔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맑은 물이 흐르고
동굴 입구엔 여느 마을과 다름없이
여인들이 아이의 손을 잡고 빨래를 오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우물가 같던 곳

 

, 여름, 가을, 겨울, 보통의 마을처럼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뒷산 솔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던 곳
가을이면 엄마들은 마당에 붉은 고추를 말리시고 겨울이면
하얀 눈이 마을을 덮고 아이들은 부푼 꿈을 꾸게 하던 곳

 

- 이제는 사라진 마을
그리워 그리워 목청껏 불러도 돌아올 수 없는
내가 나고 자란 마을이여!

 

먼 훗날 누구라도 중앙선 열차를 타시거든
지금의 단성 역 그 자리쯤
여느 마을과 다름없는 참 평화로운 마을이 있었다는 걸
입으로, 입으로 전해주는 이 있다면
허공에 손가락을 대면 텅! ! 소리가 날 것 같은
지금의 이 마음처럼 슬프지만은 않겠습니다.

 

*한국시인협회 2010년 사화집 원고 작품 

* 단성역: 중앙선에 있는 기차역으로 단양역과 죽령역 사이에 있다. 1942년 충북단양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였다. 1985년 구단양역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1993년 단성역으로 이름을
변경하였으며. 2008년 여객 영업을 중단하였다.

 

 

70, 다섯 살 내 손주

 

               최영희

 

외국에 갔다가 1년 만에 돌아온 첫날

다섯 살 내 손주,

할머니 무릎에 앉아

털어놓는 심경 고백,

“할머니~~~

전에 다니던 유치원‘정이,가 나를 좋아했는데,,,

(-그 유치원은 우리 아기가 네 살 때 다니던 곳이다.-)

그래?

우리 아가도‘정이,가 좋았나 보네?

고개를 끄덕인다

 

먼먼 타국생활,

1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한

네 살배기 첫 마음, 첫 사랑

오늘 귀국 첫날, 그 친구

생각이 나나 보다

 

- 그 맑음, 그 순수함

다섯 살배기의 심경 고백

별빛만큼 아름답다

 

그 마음 하얀 빛이겠다

나의 네 살도 그랬겠다.

 

71, 매미 소리 

 

                     설백 최영희 

창 밖, 매미

소리로 쓰는

마지막 생()의 서()

바람의 심장마저도

갈기갈기 갈라지겠다

 

, 그리고 나

한 생을 살다 가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

많기도 한가 보다

 

울어라

, 내 삶의 노래

너의 마지막 여름처럼

부르고 또 부르련다

 

한 생이

이렇게 애닯고 아픈지

너도 알았음이야

 

영문 모르는 세 살배기 손녀

네 소리 쫓느라

작은 걸음 잠시 멈춘다

()의 아픔은

듣지 말았으면 좋겠다.

 

72,무명 조각보

 

                   최영희

 

한 전시장의

무명 조각보

 

우리들

그때 그 겨울밤

머리맡 호롱불 밑

단아한,

어머니 모습이 보인다

 

무명천 조각조보

가난을 다독이던

참 고운, 어머니

그 모습이 보인다.

 

73, 소나무 아래서의 단상(短想)

 

                         최영희

 

소나무 아래에서 하늘을 보면 하늘은 신선처럼 수염이 달렸다.

하늘은 잔잔한 빛으로 점잖게 소나무밭을 거니시고 소나무는

조선의 옷을 갖춰 입고 예를 갖춰 말씀에 귀 기울인다. 예를 갖춰

소나무 아래 서 보라.

- 백성을 사랑하사! 백성을 사랑하신, 우리의 임금님들께선 지금

어느 세상쯤 거닐고 계실까. 그 세상을 살고 간 하얀 옷 백성들의

숨소리는 어디쯤에서 들려 오는가.

 

천 년, 천 년,,,

아름으로 굽은 등 선

소나무 아래 서 보라

- , 세상이 깊다

먼 곳에서부터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74, 나는 이렇게 오늘을 간다

    -행복을 위한 레스피-                    

                                 최영희

 

나는 오늘 하루도 변함없이 이렇게 세상을 간다

스스로 행복한,

행복한 바보

날마다 이른 새벽 눈을 뜨면 거울을 보고

아무렇게나 자란 들풀 같은 나에게 환하게 한 번 웃어 주고

‘오늘 하루도 행복할 거야, 라고

스스로 위로하는,

 

매일처럼 집안을 둘러봐도 20년 된 냉장고와 전기밥솥

30년 된 장롱은 그 자리에 여전하고

40년이 훌쩍 넘은 평생지기

내 곁을 지키니

이 편안함,,,

오늘도 여전히 편안할 거야

나는 오늘도 그렇게 세상을 간다

 

예전이나 지금처럼 길을 가다 떨이! 떨이! 매장을 만나면

몇천 원에 바지 하나 티셔츠 한 장 사고 행복해하는

내 모습이 이쁜, 나는 행복한 바보!

행복한 가난뱅이!      

 

75, 저 언덕이 나는 좋다 

 

                          최영희

 

나는,

멀리 보이는 저 언덕이 좋다

언제 보아도 좋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완만한 저 능선

고향의 그곳 같고

어머니 품만 같아

좋다

 

저 너머엔

참 오래된 이야기가 있을 것 같고

그 이야기가 길 따라

조근조근 들려올 것만 같아

나는 좋다

 

능선 따라 마구 자란 풀도

내 그리움만 같아

좋다,

언제 보아도 좋다.        

 

 

시인의 말

-그립다는 건-  // 최영희

 

 

우리, 그립다는 건

반드시 과거 지향적 만은 아닙니다

꽉 채워진 도시,

산 보다 높은 건물들

거리는 화려하고,

풍성해지고

우리가 그토록 그리던 이상향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립다는 건

반드시 과거 지향적 만은 아닙니다

저녁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초가집이 그립고

고향 거기쯤 순이처럼 순박한 찔레꽃이 그립고

돌다리 사이 찰찰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그립고,,,

 

우리가 여기서 그립다는 건

어릴 적 내가 맡고 자란 순하디순한 고향의 풀 내음 같은

고향 언덕 그 바람의 손길 같은,

다투지 않아도 모두가 함께할 수 있었던 우리들의

그때 그 시절의 향수인가 싶습니다

그 그리움 한 편씩 엮어

여기, 다시 한 권의 시집으로 묶습니다

 

3집을 내고 어느덧 5년여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각 문학지, 동인지 등에 실린 글들이지만,

더 늦기 전에 묶어 제4집으로 하고자 합니다.

작품 해설을 맡아 주신 이명재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시집 발간 때마다

신경 써 주시는 홍금자 스승님, 그리고 옆에서 늘 격려와 함께 힘이 되어

주는 가족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께도 따듯함으로,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2016년 4월 20일 발행- 月刊文學 출판부